토종 종자 지킴이 장명진 이사장 "마을마다 특성에 맞는 마을기업 키워내겠다"

장명진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 이사장.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장명진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 이사장.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장명진 이사장을 만났다. 오랜 농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어서일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농민과 농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의 선한 눈에서 인터뷰 내내 그가 언급한 공동체에 대한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토종 종자를 지키려고 하고, 바른 먹거리를 위해 애쓰면서 같이 잘 사는 농촌 공동체를 꿈꾸는 장 이사장을 보면서 문득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고 일갈했던 전우익 선생이 떠올랐다. 그리고 농업이 나라의 근간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아느 것 하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공부가 온전하지 못해 풍부한 인터를 못해 내내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전해준 흥미로운 앉은뱅이밀 이야기는 유튜브채널 충남타임즈TV’에 따로 업로드한다.[편집자]

 

아산제터먹이 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20살 때부터 농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만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나라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에 한살림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심으로 음봉면 공동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협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5인 이상은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됐죠.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조합을 만들었겠죠. 그래서 협동조합을 준비하는데 기왕이면 사회적 책임을 함께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로는 협동조합이 더 편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동체를 운영해보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주된 사업이라면?

바른 먹거리운동을 중심으로 시작했고 종자주권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종자가 결국은 우리 농업의 미래 아닙니까. 지금 계량종, 교배종들의 경우 다국적 대기업들이 전세계의 종자를 좌지우지하려는 상황이고 벌써 우리나라 농업경제에 파고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종자를 수매해서 가공하고 판매한 뒤 그 부가가치를 생산자에게 다시 환원해주는 공동체를 운영해왔습니다.

국내에서 토종 종자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소개해주신다면?

전국에 분산돼 있는 많은 종자 마니아들이 자발적으로 종자를 소중히 여겨 대를 이어 지켜왔습니다. 이제는 씨드림이라는 토종 종자를 지키는 사람들의 전국 네트워크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에서 서로 씨앗도 나누면서 더 많은 종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굉장히 많은 종자들이 그래도 보존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죠. 많은 종자를 이곳에서 구할 수 있었고 그 종자로 농부학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농부학교가 있습니다. 아산제터먹이에서 운영하는 농부학교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소비자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농부학교에서는 해마다 1년 과정을 함께 하면서 씨앗의 소중함, 농업의 소중함 그리고 농업노동의 소중함을 함께 배웁니다. 1년 동안 농부학교에서 키운 작물에서 씨앗을 채종(採種)하고 또 대를 이어가는 씨앗의 순환체계를 함께 배웁니다. 많은 도시에서 진행하는 농부학교는 시장에서 사온 것을 심지만 우리는 참여자들이 단 한 톨의 씨앗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른 종자가 와서 교잡이 되면 종을 지키기 어려워 오직 토종 종자로만 농사를 짓습니다. 1년에 5~6만 주 정도의 모종을 봄에 목숨 걸고 키워냅니다.

장명진 이사장이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을 소개하는 영상을 직접 찍었다.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장명진 이사장이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을 소개하는 영상을 직접 찍었다.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주로 어떤 모종들입니까?

콩 종류부터 고추, 오이, 땅콩 등 여러 종자들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종자가 150종 정도의 밭작물과 35종의 토종벼 논작물입니다. 벼 종자는 원래 3000~4000개가 넘는 종자가 전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아키바레(1969년 장려품종으로 지정된 일본 유래 품종-편집자)가 들어오면서 토종이 많이 소멸돼 지금은 정리된 게 350가지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종자가 10분의 1 정도입니다.

토종 종자가 생산량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습니까?

당연히 경쟁력은 없죠. 하지만 맛이 뛰어나 농민들이 가격을 가격을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토종 종자로 농사짓는 게 농가소득이 훨씬 높습니다. 일단 농약도 덜 들어갑니다. 토종 벼농사에서 화학비료를 넣으면 망하는 겁니다. 토종벼는 약간의 거름만 넣기 때문에 수확이 적을 수밖에 없지만 가격은 3배 이상 더 받을 수 있습니다. 토종을 소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생산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조합 이력을 살피다보니까 처음에 콩나물에 주목하신 게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가 음봉면 생산자들에게 한살림으로 콩나물을 납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래서 공동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100% 자급을 하자, 콩을 외지에서 가져오지 말자고 했습니다. 마음을 모았던 조합원들이 토종 콩을 심고 그걸로 콩나물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으로 납품하는 콩나물 중에서 우리 것만 토종이고 다른 곳은 개량종입니다.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 김선경 상무.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아산제터먹이협동조합 김선경 상무. 사진=충남타임즈 김재범

현실농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었습니까?

콩나물콩과 앉은뱅이밀을 이모작 재배하는 것이 우리 전통농업이거든요. 전통농업도 복원하고 농가소득도 올리는 일석삼,사조의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생각이 마음이 급했습니다. 다른 종들은 종자를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밀과 콩의 이모작을 시도해 성공시킨 것이 대표적인 적용 사례입니다. 이후에 다른 종자들도 농민들에게 심게 해서 또 하나의 상품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10, 20, 30년 이어가면서 토종 종자를 이어갈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가야죠.

누리집을 보니 다양한 상품들을 팔고 있던데요?

OEM을 하니까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토종 유기한우로 만든 곰탕이나 부침가루, 튀김가루도 사실은 업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시제품은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는데 아직도 본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직접 가공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한계죠. 그래서 조합원들의 물품을 같이 판매하면서 더 품목을 늘릴 생각입니다.

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과의 계약도 남다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매년 5월에 지역 농민들과 약정 계약을 맺습니다. 핵심은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정한 적정가격으로 수매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이만큼은 농민이 받아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가격으로 수매를 합니다. 시장가격과는 관계없이 그렇게 수매를 결정하고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얼마나 가겠냐고 그랬거든요.(웃음)

조합 소개글에 지방소멸위기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음봉면 전체 마을에 대한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농촌마을 공동체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목표는 마을마다 특성에 맞는 마을기업을 키워낼 생각입니다. 도회지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이 지역 출신 청년들이 다시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서 마을기업도 운영하고 농사도 배우게 하고 싶습니다. 독거노인만 많은 농촌에서 부양의 책임도 하고 마을공동체가 웅성웅성하도록 활성화하는 목표를 삼았던 겁니다. 예를 들어 장류라든가 수공예 제품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것들을 제터먹이 브랜드로 집합시키는 거죠.

논란이 된 바 있는 아산시의 사회적 경제정책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글쎄요, 사회적 경제를 사회주의와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산시만큼 사회적 경제가 다양하게 양성된 지자체가 드뭅니다. 저는 아산의 사회적 경제가 조금만 더 성장하면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정부의 치적을 뭉개버리려고 하는 저의가 깔려있다는 의심도 하게 됩니다. 우리 조합은 유지는 하겠지만 지금 성장단계에 있는 소규모 기업들은 답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그냥 사업을 접는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데가 꽤 됩니다. 정몽주를 뒤에서 친 것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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