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유네스코 세계유산 ‘무령왕릉과 왕릉원’ 재조사 성과 발표
[충남타임즈] 백제가 공주에 도읍했던 시기, 흔히 정치 혼란기로 인식되던 ‘웅진기’에도 왕실 권위와 대외 교역망이 견고히 유지됐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나왔다. 공주시와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1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무령왕릉과 왕릉원’ 중 1~4호분 발굴 재조사 결과를 서울에서 공동 발표했다.
이번에 재조사된 고분군은 무령왕릉 묘역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1~4호분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도굴과 함께 간단한 조사가 이뤄진 후 90여 년 만에 재조명됐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재조사는 웅진기 백제 왕실의 정치·문화 수준과 대외 관계, 묘제 변화 등을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사 결과, 이 묘역은 경사지를 인위적으로 조성해 동쪽부터 1호분에서 4호분까지 계획적으로 배치되었으며, 모두 지하에 석회로 마감된 돌방 구조로 만들어졌다. 내부 바닥에는 30cm가량의 강 자갈을 채워 안정성을 높였다. 이는 한성기에서 웅진기로 넘어오며 백제 왕실이 계승한 묘제 전통과 장례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2호분에서 출토된 청색 유리옥 장식 귀걸이, 금도금 은반지, 은장식 오각형 칼손잡이 등 금속 공예품들이다. 청색 유리옥 귀걸이는 무령왕비의 장신구와 유사하지만 보다 이른 시기의 양식으로, 웅진 초기에 재위했던 인물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은반지는 경주 황남대총 출토품과 유사해, 당시 신라와의 긴밀한 교류를 짐작케 한다. 장식칼은 나주와 논산에서 확인된 사례와 비교해 백제가 지방 유력자들에게 하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과 같은 납 성분이 검출된 황색·녹색 유리구슬도 다수 확인됐다. 태국산으로 분석된 이 유리옥들은 웅진기 백제가 동남아시아와도 활발한 교역을 이어갔음을 시사한다. 출토된 유리옥은 총 1,000여 점에 달해 당시 외부 물자 유입이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장 주목할 성과는 2호분의 주인공이 삼근왕일 가능성이다. 귀걸이와 함께 발견된 어금니 2점의 법의학 분석 결과, 해당 인물이 10대 중후반으로 확인되면서, 재위 당시 15세였던 삼근왕(재위 477~479)의 묘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14호분에 묻힌 인물들이 문주왕과 삼근왕 등 개로왕 직계 후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단지 무령왕의 단독 유적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백제 왕실 전체의 정통성과 교역망, 장례 문화를 입증하는 복합 유산이라는 점에서 재조사 성과의 의의는 크다. 조사단은 “정치적 혼란기로만 간주됐던 웅진기에도 백제는 내외부 체계를 견고하게 유지했다”며 “이 같은 기반이 있었기에 무령왕이 ‘다시 강국이 됐다’고 선언할 수 있었고, 성왕은 사비 천도와 문화적 성숙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최원철 공주시장은 “공주의 왕릉원은 백제사 연구의 핵심이며, 지속적인 발굴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의 진정성과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 성과는 6월 18일과 19일 양일간 무령왕릉과 왕릉원 모형전시관에서 시민과 관람객을 대상으로 공개 설명회가 진행된다. 현장 접수는 오전 9시부터이며, 설명회는 오전 11시부터 순차적으로 20명 단위로 진행된다. 우천 시 취소될 수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로 하면 된다.
